크건 작건 오늘의 뉴스 가운데 좋은 뉴스 3가지를 선정하여 내 블로그에 기록한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매일 밤 간단히 편집하여 다음 날 오전 중에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960번의 도전끝에 운전면허 성공한 할머니의 열정

960번의 운전면허에 도전한 할머니가 드디어 면허취득에 성공했다. 차사순 할머니는 2005년 4월 첫 필기시험에 응시한이래 950번째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각각 다섯 번씩 떨어져서 총 960회 도전만에 꿈에 그리던 운전면허증을 거머쥐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팔며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한 차사순 할머니는 꼭 필요한 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을 불살랐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와 멈출줄 모르는 노력은 열정의 산물이다. 이런 열정 우리가 모두 배울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960번 도전' 할머니, 운전면허증 땄다 (연합뉴스)
현대차, 차사순 할머니 등 이웃에게 차량전달 (머니투데이)



2. 교수 임용비리 폭로

교수를 채용할 때 돈을 받고 채용하는 관행이 아직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광주지역의 조선대학 시간강사가 임용비리와 관련돈 유서를 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전남지역의 한 대학 전직교수들이 교수 임용당시 실제로 돈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그들은 "학교 측이 1996년 채용 당시 대가로 6000만 원을 요구해 돈을 전달했다"며 "학교 측은 당시 재정 여건이 좋아지면 되돌려주겠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폭로란 말 자체는 아름다운 말이나 좋은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강사의 자살이라는 비극 앞에 우리의 비극적 대학 현실에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 측의 부도덕한 행태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고백하며 어두운 현실은 바로잡으려는 행동은 정의를 위한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돈 주고 교수됐다" 폭로 파문 (뉴시스)
▲ "교수 1자리가 1억5천~3억” 자살한 40대 시간강사의 유서 (경향신문)



3. 래프팅의 수호천사 급류순찰대

무더운 여름, 매일 수천명이 래프팅 등 급류타기를 즐기고 있다. 연간 160만명이 이용하는 스릴 만점의 여름 레저 스포츠로 인기가 높지만, 때로는 급류에 휩쓸려 위험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출동하는 급류순찰대가 있다. 2008년부터 인제 내린천을 비롯해 금강, 동강 등 5개의 민간급류순찰대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내린천에는 8명의 대원들이 봉사활동으로 일하고 있다. 아무런 보수없이 일하는 순수한 민간 봉사활동이다. 해경이 복장을 지원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들어주는 생명보험이 이들에게 지원되는 전부이다. 구조장비는 모두 순찰대원들이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이 대원들은 저마다 각각 가슴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다. 친한 친구나 친지가 급류에 휘말려 사망한 사연 등 자신이 구조하지 못한 사연 때문에 수영과 구조기술을 배워 구조대원이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명을 구조하는데 아무런 댓가없이도 헌신하는지 모른다. 급류순찰대원들의 인명구조활동은 아름다운 뉴스이다.
그러나 급류순찰대의 활동에 따라 해마다 급류타기로 인한 피해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데도 해경과 지자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거나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방관하고 있는 듯하다. 해경과 지자체 등은 빨리 적절한 예산을 마련하여 적당한 자격을 가진 대원들을 채용하거나 체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은 정부기관 아닐까.

(관련 뉴스)
시사매거진 2580 (MBC)  
내린천 급류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라 (세계일보)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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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향남선수의 경력과 도전에 관하여
 -한 늦깎이 투수의 메이저리그 도전

나는 일과 직업, 경력과 그 변화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나 평범함 속에서도 빛나는 경력을 가꾸어 가는 사람을 보면 절로 마음이 갑니다.

최향남이란 야구선수를 아세요?

최향남선수

저는 프로야구 열혈팬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 선수를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최향남 선수라는 프로야구 선수의 커리어경영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최향남 선수가 최근 깜짝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특이한 경력과 도전에 있습니다.
미국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 소속으로 올시즌 34경기에 출장해 8승5패, 평균자책점 2.37 로 놀라운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로 진입하기 위한 그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 9월 4일 시즌을 마치고 구단측은 메이저리그 승격자 6명의 명단에서 그를 제외하였습니다. 충분히 기대해 봄직한 좋은 성적이었지만 구단측은 젊은 선수들로 승격대상자를 가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한 최향남 선수는 곧바로 7일 귀국하였습니다.

최향남 선수의 이력서

그럼 여기서 잠깐 최향남 선수의 이력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의 이력서를 약식으로 작성해 보겠습니다.

기본사항

성명 : 최향남
생년월일 : 1971년 3월 28일생(양력)
병역사항 : 육군 현역 필(1991년~ )

학력사항
1990년 2월 영흥고등학교(목포) 졸업

경력사항

1990년 ~ 1996년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
1996년 ~ 2003년   프로야구단 LG트윈스
2004년 ~ 2005년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
2005년11월 ~ 현재 미국 클리브랜드인디언스 트리플A 버펄로 바이슨스 재직중

상세경력사항

해태타이거즈 (1990~1996)
1990년 0승 1패 평균자책 15.19
1995년  0승 5패 평균자책 3.86
1996년  1승 0패 평균자책 4.88

LG트윈스 (1997~2003)
1997년 8승 3패 평균자책 2.99
1998년 12승 12패 평균자책 3.63
1999년  8승 5패 평균자책 4.26 
2000년  4승 7패 5세이브 평균자책 3.46 
2001년  0승 1패 평균자책 6.75 
2002년  7승 9패 평균자책 4.46
*2003년 1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트라이아웃 참가(일본)
*2004년 2월 대만 라뉴 베어스 테스트 참가

기아타이거즈 (2004~2005)
2004년  2승 1패 평균자책 3.57
2005년  2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 4.10

* 한국프로야구 활동시 통산 44승 4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3.91

버팔로파이슨스 (2006)
2006년 8승 5패 평균자책 2.37 (출장 34경기)

다시 보는 최향남 선수의 경력

위 상세한 경력사항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최향남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해서 부진하게 출발했고, 4년간은 완전히 출장하지 못한 공백상태였습니다. 이 당시 해태의 감독이었던 김응룡 감독은 최향남 투수를 '불펜의 선동렬'이라고 했습니다. 불펜에서 구질이 좋은데 마운드에 들어서면 웬일인지 구질이 떨어지고 난조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편 최향남 선수는 '새가슴'이라는 별로 예쁘지 않은 별명도 얻게 됩니다.

LG트윈스 시절에는 경력상에서 위기를 의식했을까요. 아주 열심히 던져서 1997, 98, 99년 3년동안에는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LG트윈스의 에이스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2천년부터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고, 2001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1패만을 기록했습니다. 2002년 부활하는 듯 했으나 2003년 부상여파로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채 바로 그해 10월 방출됐습니다. 가까스로 그의 첫직장이었던 기아타이거즈로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03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였으나 "방출 이력이 있는 선수는 안 봐도 뻔하다"고 하여 곧바로 짐을 싸야했습니다. 뒤이어 최향남 선수는 2004년 2월 대만으로 향하여 라뉴 베어스에서 다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무소식 이었다가 기아에 재입단 하자마자 오라고 연락와서 못간 경험도 거치게 되었습니다.

기아에 정착한 뒤 빅리그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최향남 선수는 다시 진출을 시도한 끝에 결국 2005년 2월 미국행에 성공하여 빅리그의 바로 아래 급인 마이너리그 트리플A의 버팔로 바인슨스(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소속)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최향남 선수가 보여주는 커리어경영의 교훈

36세의 노장 투수. 필살기도 없는 평범할 수도 있는 투수. 통역도 에이전시도 없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향한 기인투수, 풍운아, 남들이 말리는 짓을 강행한 투수 최향남.

우리가 그의 경력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마저 탁월한 상태에서 마이너리그 트리플A 시리즈에서 올린 놀라운 그의 성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쩌면 언젠가 피어날 수 밖에 없는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커리어경영에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단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끊임없이 도전과 재도전을 반복한 것입니다. 지금 메이저리그의 중간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만일 끝내 메이저리그행이 좌절된다면 일본무대도 두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럼, 최향남 선수의 커리어와 도전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자신의 인생, 커리어(경력)의 주인 자기 자신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늦은 나이와 좋지 못한 성적에 연봉 10만불에 미국 마이너리그행을 강행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뛰고 싶은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 그의 주인정신입니다. 최향남 선수의 가장 빛나는 모습입니다.

2.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세경력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는 처음부터 빅리거가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3.철저한 자기관리를 합니다.
  그의 아내가 언론에 말하고 있듯이 그는 평소에도 자기관리에 매우 철저하다고 합니다. 커리어경영의 본질은 바로 자기경영, 자기관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의 만류나 객관적인 선수로서의 평가에만 그가 의존했다면 오늘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관심가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억제하지 못할 열정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5.현실에 맞는 역동적인 커리어를 경영합니다.
  그가 무조건 아무런 타산없이 도전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가 안되면 마이너리그, 미국에서 안되면 일본무대, 외국무대에서 안되면 한국무대에서라도 쉬지 않고 자신의 프로선수로서의 경력을 경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난관과 시련이 있어 느린 전진이 있을 지언정 그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자기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합니다.

  이번 시즌 마감후 메이저리그 승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제외되자 같은 팀의 동료들조차 구단에 항의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그의 마이너리그 첫해의 성적과 실력은 그의 메이저리거로서의 손색없는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여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의 낙관적인 어투는 예전 '와신상담'같은 우울한 도전에 비해 훨씬 현대적입니다. "저는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았어요.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향해 야구하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얼굴 찌푸릴 일이 없었다니까요."

나는 스포츠기자도 아니고 프로야구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가 앞으로 그가 일구어 나가는 경력경로와 성취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앞으로 잘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주변환경이나 여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의 주인임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인다운 프로선수로서의 태도와 굴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오늘 경력관리의 기술을 익히려고 애쓰는 많은 경력직장인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만한 경력이다.(2006-09-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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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벨 왕중왕 윤문열 학생의 꿈과 실력  (0) 2007.01.22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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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경력은 일에 관한 역사라고 했던가. 보통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일을 갖기 시작하여 마무리할 때까지 보통 30~40년이 걸린다. 긴 인간의 역사를 놓고 보자면 짧지만 개인사로 놓고 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일하는 시간은 인생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일을 하도록 태어났고, 일을 하면서 자기를 실현한다. 일을 해야 쉬거나 놀아도 즐겁다. 한 개인이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위기에 직면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위험이 나중에 복이 되기도 할 때가 있다. 그 복이 나중에 다시 위험이 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새옹지마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엔 새옹지마를 앉아서 기다리느니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한다. 어차피 영원히 나를 지켜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안전한 직장'과 '비닐하우스' vs 위험한 선택과 과감한 도전

우리나라에 이동통신의 장을 연 것은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Pager)였다. 그 후 무선통신의 새로운 장이 본격 열리기 시작한 것은 휴대폰이었는데 이 서비스는 사실 카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통신은 1984년 카폰서비스를 위해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국통신에서 한국이동통신으로 갈 사원을 차출하고 하였는데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안전하고 편한 한국통신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회사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회사에선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차출하여 한국이동통신으로 옮길 직원을 뽑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명예퇴직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1988년에 한국이동통신㈜로 회사명을 바꾸고, 출범 초기부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1989년 증권거래소에 기업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한국이동통신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싼값에 받아 상당히 큰 차익을 챙기게 되었다. 더욱이 이 기업은 1994년에 SK그룹이 대주주로 변경되어 초고속성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젠 무선통신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는 막강기업이 되었다. 반면, 한국통신은 방대한 규모의 인원을 축소하느라 항상적인 구조조정의 덫에 걸려있을 지경이다.
만일, 당시에 10년 앞을 내다보려는 적극적인 안목과 미래를 향한 도전과 열정이 있었다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안전한 직장은 얼마 뒤 바로 위험한 비닐하우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 때 위험한 선택은 성공을 위한 과감한 도전이 되었다.

인재는 자신의 커리어로 말한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한다. 이것만이 진실이다. 어제의 ‘인재’가 오늘 쓸모 없는 ‘인원’이 되고, 오늘의 인재가 내일의 낡은 짐이 되기도 한다. 오늘 엉뚱한 풋나기가 내일 기업의 핵심인재로 보랏빛 소를 발견해 내기도 한다. 인재는 자신의 커리어로 말한다. 커리어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재의 지식(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사람이 가진 책과 그 속의 내용물은 정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는 어떤 일에 활용되고 적용될 때 비로소 지식으로 거듭난다. 이것은 오지 인재, 지식을 가진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

안전한 직장과 일에 대한 오해

불안한 시대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법이다. 도무지 사고와 사건이 많은 세상에서 안전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과 일에 관해서도 사람들은 안전과 안정을 추구한다. 그런데 과연 안전한 직장이란 것이 있는가? 안정적인 직업이란 것이 있다는 것인가?
수많은 직업인들과 전문가들이 평생직장은 가고 평생직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머리뿐이고 몸은 아직도 안전한 ‘비닐하우스’를 갈망한다. 대기업이 안전한 직장일까? 속된 말로 대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은 타고 나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 임원이 되고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임원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대기업마다 차.부장이 차고 넘친다. 그들이 신입사원시절 전날 마신 술로 지각하고 졸아도 용서되었건만 이젠 어림없다. 차.부장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린 지 오래다. 그들은 위로는 임원들 아래로는 부하들로부터 눈치를 받는다. 대기업이 안전한 직장이 아니고, 다만 제법 큰 ‘비닐하우스’였다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커리어 주권을 찾아라!"

직장과 일 자체가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안전한 직장과 일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한 직장의 안전한 일자리는 비닐하우스에서 예쁘게 핀 서양란에 지나지 않는다. 거친 폭풍우 몰아쳐 비닐하우스를 날려버릴 때 기약없이 사라져버릴 나약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과 일에서 안전과 안정을 찾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현대 경영구루의 한 사람인 톰 피터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화이트칼라 직종 중 최소한 80%가 15년 안에 완전히 사라지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뀔 것’이라고 했고, GE의 새로운 회장 제프 이멜트는 2002년 초 인터뷰에서 3년 안에 GE의 행정과 사무 지원 업무의 75%를 ‘디지털화’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안전과 위험, 안정과 불안정의 잣대는 이제 커리어의 주인인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의 커리어와 지식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생존을 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가? 커리어에 생명을 불어넣고, 끊임없는 자양분을 통해 튼튼한 나무로 자라게 해야 한다. 그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시대 생존과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직장인으로 일하건 자신의 기업을 경영하건 자신의 업(業)을 키워나가야 한다. 오늘 대기업의 임원들, 40대의 경력자들이 기업으로부터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커리어의 주권을 다시 찾는다면 지금의 잠시 불행을 큰 행복으로 바꿀 새옹지마의 적극적인 재현을 이루게 될 것이다. (2006-07-12  월간 엑스퍼트에 기고한 글)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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