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 연시는 가슴 벅찬 흥분과 설렘을 느낍니다.
연말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낡은 해의 성과와 교훈이 머리 속을 노닐고 있습니다.
새해를 몇 일 앞둔 시점에는 새해 전망과 목표를 어떻게 세울까 골똘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올 해는 28일 제주도 출장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 해 마무리가 확실히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2008년에 비해 2009년에 계획했던 일부 일에서 뚜렷한 성과가 있었던 성공적인 한 해 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방송출연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취업난과 일자리 문제였습니다. 일자리 문제는 제가 큰 자본력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책담당자도 아니지만 우리 이웃 누구나의 문제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평생직장이 없어지고, 평생직업 나아가 평생 일하는 시대가 확실하게 눈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15년 정도 근무한 중견 간부사원들은 이제 현실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직업세계에서 각자와 나라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해서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분발해야 하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새해 자신을 통찰하면서 자기계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기계발은 가벼운 기술이나 재능만을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자신이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수년 전에 그것을 발견하였고 지금 매진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크든 작든 전진이 있습니다. 올해에도 알찬 계획과 포부가 가슴에 차 오릅니다.

1.커리어
자신의 직업과 일, 경력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와 전진을 감행해야 합니다.
2.가정과 사랑
가족 구성원들과 한 명 한 명 구체적인 관계 증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족과 사랑에 무슨 계획이냐 의문도 듭니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잊지 않기 위해서 한 명 한 명에 대한 구체적인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3.경제(돈)
새해에 자신의 수입을 안정화 하거나 원한는 만큼 소득을 올리는 문제를 목표로 세울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때 경제적인 수입도 착실히 늘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4.관계, 공동체(친구)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꾸준한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와 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대로 노력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관계별로 잊지 않고 시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5.건강과 운동
올 해 드디어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었습니다. 제가 죽을 즈음에는 암, 뇌질환, 심장질환이 없다면 90살은 넘게 살 가능성이 큽니다. 하여 마라톤, 수영을 비롯한 자신에 맞는 체질운동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작년에 부진했던 마라톤에서 정상 페이스를 회복하고 약간의 성취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6.마음
마음의 안정과 평화는 행복의 신호입니다.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종교활동으로, 종교가 없는 사람도 늘 마음의 안정을 위해 명상, 여행, 예술작품 감사 등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좋습니다.

자, 백호의 해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주인인 우리 각자는 자신의 계획과 포부에 따라 자신감과 낙관을 가지고 될 때까지 밀고나가는 완강함을 유지합시다.
2010년을 멋진 성과와 나눔의 한 해로 만들어 갑시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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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봄의 첫 시작 3월이다.
3월 1일 첫날을 나는 마라톤으로 시작했다.
겨우내 체력관리와 운동을 얼마나 잘 했는지를 알아보는 첫 시험무대이다.
많은 달림이들이 추운 겨울동안 움츠리지 않고 건강은 물론 달리기 실력을 과시하는 날이기도 하다.
2주 후면 2만명의 풀코스 완주경험자들이 경합을 벌이는 동아마라톤이 있어 예행연습삼아 달리기도 한다.
정식 코스는 아니지만 3.1절 마라톤에서는 30km가 가장 긴 코스이다.
나 역시 30km코스를 지원해 달렸다.

지난 해에는 연습도 많이 하지 못했고, 대회 주최측의 코스 측정 및 표시 실수로 유난히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올해는 그런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연습이 부족한 나의 문제!

조금 쌀쌀하지만 맑은 날씨!
출발전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해 몸도 풀고 대회장 이곳 저곳도 둘러 보았다. 대회 때마다 종종 만나는 분들도 역시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가볍게 몸을 푼다.

드디어 출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 평화공원을 출발하여 한 바퀴 선회하고는 강변북로를 따라 이어진 한강둔치 자전거도를 달리는 코스이다.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는데 그 반환점이 한남대교 북단이니 제법 먼 거리이다. 쌀쌀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지만 달리기엔 큰 어려운 날씨는 아니다. 다만 손이 조금 시려울 뿐이다. 컨디션이 괜찮다면 속도를 조금 앞당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낀다. 발목 부위의 약간의 통증이 심하지는 않아 반환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2.5km마다 공급되는 물이나 이온음료를 꼬박꼬박 마셨다. 초코파이를 주는 곳도 있었고, 바나나를 주는 곳도 있었다. 연습 부족이 틀림없는 것일까. 타고난 체력이 약한 것일까.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건만 달릴 때 마다 사투를 벌여야 한다. 반환점 이후 돌아오는 코스는 맞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왜이다지 달리기가 벅차는 것일까. 앞서 달리는 세 명의 달림이들이 연두색 환한 조끼를 입고 달렸다. 그래 저 사람들을 따라가보자. 수 킬로를 그 분들을 따라 제법 힘차게 달렸다. 앞서가던 많은 사람들을 뒤로 제치며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바나나를 주는 곳에서 나는 바나나를 먹었다. 앗! 그런데 그 분들은 먹지도 않고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닌가. 재빨리 먹고 뒤따라 잡으려 열심히 달렸다. 약 백 미터 정도 뒤졌을까. 한동안 따라 잡는가 싶더니 굽어진 도로에서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외로운 달리기~

20킬로, 25킬로, 마지막 고비 28킬로를 돌아서니 죽음의 언덕이 나타난다. 앞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니 지쳤는지 언덕 길을 달리지 못하고 걸어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마음의 고집을 좀 부렸다. 좋다, 아무리 느리게 달리더라도 쉬지 말고 달려보자. 아주 천천히 톺아오르는데 역시 힘들기 짝이없다. 거친 숨을 참기 위해 최대한 코로만 호흡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골인지점의 장내 아나운서가 힘겹게 골인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으로는 힘차게 달려들어가고 싶은데 발이 빨리 나아가지 않는다.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호흡이 되고, 발이 나아가는 만큼만 최선을 다했다.
골인지점에 오니 가족들이 소리친다. 사진도 찍나보다.

하하! 드디어 골인!
30킬로 내 최고기록 3시간 9분보다 못한 3시간 11분 52초다.
역시 난 기록을 당기는 것보다 달리는 것 자체에 만족해야겠다.

그나마 이번 30km 달리기에서 조금 보람되는 것은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렸다는 점이다. 2주 후에 있을 동아마라톤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풀가동해 보았는데 역시 쉽지 않음을 알겠다.
쉬지 않고 달린 것이 무리가 되었을까? 달리고 나서 아는 분들과 식사하러 갔는데 그 곳에서 그만 다리에 온통 쥐가 난다. 다리 근육이 에일리언 처럼 꿈틀대다 딱딱하게 굳어진다. 으~ 나는 왜 이렇게 쥐가 평생 잘 나는지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역시 마라톤은 골인하고 나서 다음을 기약하는 성취와 도전에 있다.
신나게 달리다, 힘겹게 달리고, 너무 힘겨우면 좀 쉬고, 다시 달리고, 결국 골인한다.
마라톤! 역시 인생과 참 닮았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마라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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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9월 27일 경기평화통일마라톤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연습이 부족한 탓에 풀코스는 접어두고 하프코스에 도전했습니다.
21km를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연습없이는 쉬운 장정이 아닙니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가 오히려 달리기엔 좋은 날씨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였습니다.
대회 주최측은 이 대회의 자랑을 통일대교를 건너 민통선 안쪽을 달려갔다가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민통선 안쪽을 잠깐 달려갔다고 오는 것이라 얼핏 보아 민통선 안쪽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군부대와 군인들의 정열만이 민통선 안쪽임을 짐작케 합니다. 민통선 안쪽 반환점에서 어린이들이 천에 그린 재미있는 그림들이 눈에 뜨입니다. 평화조각보입니다. 한반도, 태극기, 북의 인공기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 씩의 조각보를 이어 붙이고, 그것을 철조망에 걸어놓으니 참 멋있어 보입니다. 십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달리며 보이는 그림들에는 참신한 어린이들의 발상이 돋보입니다. 어른들의 냉전사고방식과는 달리 아이들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보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나는 여러 마라톤코스 가운데 임진각에서 출발하여 자유로를 달리는 코스를 좋아합니다.
자유로 양도로 가운데 쪽에 풀밭이 있고, 그 곳에는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많이 피어있기 때문입니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달리는 사람의 피로를 풀어주고 환하게 웃어주어 참 기분좋은 꽃입니다.
자유로의 가운데 풀밭이 많이 없어지고 도로로 포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임진각에 가까운 도로 가운데는 아직 코스모스와 풀밭이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늘 그렇듯이 이 날 대회도 큰 욕심 내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완주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연습부족은 기록을 당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만 일깨워줄 뿐입니다.

참가자들이 대회주최측의 목표와는 다르게 1만명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골인하여 가볍게 몸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눈에 띄는 재미있는 모습은 바로 당나귀입니다. 온순한 성격이어서 평화를 상징한다고 하여 작년부터 행사장 한 곳에 몇 마리의 당나귀를 초빙해와 어린이들을 태워줍니다.

평화의 상징 당나귀
당나귀 마차이지요. 작은 방울소리를 내며 당나귀마차로서는 제법 빠른 속도로 마부의 능숙한 솜씨에 의해 어린이들은 신나는 한 때를 맞이합니다. 제가 마차에 타도 탈은 없어보이지만 어린 당나귀들인지 어른들은 태우지 않습니다. 당나귀는 정말 순한 동물 같습니다. 주변에 낯선 사람들이 구경하며 어떤 어린이는 귀찮게 구는데도 성내는 법이 없습니다. 이 정도로도 9월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에서 푸는 하늘 이고 달리는 보람은 충분합니다. ⓒ서형준코치 zfJBPi8M3VoFDBLP5Sw5wyDpEtU4I38IO1DF+Ud8t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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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5년 만인가 봅니다.
얼마전 9월 첫 일요일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도선사 입구 쪽에서 출발한 백운대 산행!
90년대 초반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던 해의 새해 첫 날, 하얀 눈을 이고 거연히 솟은 백운대를 찾아 희망 한가득 안고 내려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서른 살을 전후한 나이임에도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운동이란 걸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이 번 산행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물집 따위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산을 잘 타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인 하산 시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현상도 거의 없었습니다. 9월 초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다지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운동부족인 여인네들도,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도 생각보다 산을 잘 올랐습니다.

예전 기억에 산 저아래서 백운대 정상을 바라보며 허리를 펴면,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제 다 왔다고 격려반 약올리기 반으로 마주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백운대 정상이 바라다 보이고 인수봉이 가까이 보이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인수봉을 암벽등반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제법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흔들흔들 하면서도 조금씩  자일을 튕기면서 잘도 오릅니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백운대 한 5백미터 전일까요, 백운산장에 이르렀습니다. 시장기가 밀려오지만 배에 음식을 담고 오르면 무거워서 더 힘들까봐 물만 조금 마시고 다리를 쉬어 다시 올랐습니다. 백운대 정상에 이른 길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오르 내리는 사람들이 같은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약간 위험한데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잘 올랐습니다.

드디어, 백운대 정상!
정상에 선 순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이르러 하늘로 시선을 던집니다.
깨끗한 하늘! 여전히 높은 하늘입니다. '잘 있었나?'
하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 몇 장 담았습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 정상에서는 모두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도 보이고, 저멀리 하얀 아파트들도 즐비하게 보입니다.
산아래서 그렇게도 높아보이던 바위산 인수봉도 저만치 아래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 정상에 서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과거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이 때로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거의 매일 힘들게 살아가지요.
뜻한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때도 있는 법이지요.
우리는 압니다. 그게 인생이란 것을. 또 우리는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땀흘리며 오른 백운대 정상은 백두산 아래 있고, 인수봉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또 오르면 더 높은 봉우리에서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백운대 산행을 통해 한 가지 기쁜 일은 예전보다 다리와 폐, 심장이 모두 튼튼해 진 것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올 해는 봄, 늦봄 연이어 손가락과 발목을 다쳐서 달리기를 하지 못했는데도 백운대 산행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경력이 가진 연륜이 연습부족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나봅니다. 산을 내려오며 작은 다짐을 합니다. 산을 내려가 평지에 이르면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 겠다고.
평지를 힘껏 달리면 정상에 이르는 길도 그리 힘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가지 기쁜 일은, 아이들이 많이 커서 어린 나이에 백운대 정상에 거뜬히 오를만큼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산행을 성공리에 해냄으로써 아이들 다리와 가슴, 머리 속에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믿습니다.

백운대, 인수봉아 안녕!
다음에 다시 보자. 그 때까지 상처입지 말고 잘 있어 줘.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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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월 16일은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대회날이었습니다.
동아마라톤은 참가자만도 2만 5천명이며, 전세계 65개국에 생중계된 경기였죠. 물론 저같은 마스터즈 경기는 자세히 중계는 안하고, 이봉주 선수같은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를 중계했을 것입니다.

어제 아침, 사실은 밤잠을 설쳐서 거의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5시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일찌기 대회장인 광화문 세종로로 갔죠. 이른 아침 지하철 내부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까운 역이 다가오자 차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운동복에 마라톤화, 모자를 쓴 참가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역 구내에는 끼리끼리 둘러모여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풀거나 대회당일 컨디션을 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제법 큰 대회를 넘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같았습니다.

사실 이 대회를 앞두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큰 두려움 모르고 세지 못한 체질에 2년 반 달려온 거리였지만, 이번 대회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지난 겨울 11월 초순 대회에 참여한 이래 겨울 달리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12월과 1월은 단 한 번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2월 중순에서야 조금 씩 달리기를 하였는데, 이번 겨울은 왜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지 연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008년 들어 첫 풀코스인 동아마라톤은 작은 두려움이자 설렘이었습니다.
전 날 밤 잠을 못이루었지만 그런대로 몸 상태는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았고, 아는 후배, 친구, 선배를 만나서 출발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2005년 9월 마라톤 달리기 연습을 처음 시작한 이후 네 번의 풀코스를 힘겹게 완주했습니다. 이 날 대회가 가장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달리기 기간에 제가 느낀 것은 마라톤이 아주 정직한 경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겨우내 훈련하지 않은 나의 잘못을 이 날 대회는 혹독하게 저를 꾸짖을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

숭례문의 아픈 상처를 돌아 달리는 마라톤 참가자들



처음엔 풀코스를 처음 달리는 후배와 함께 10킬로 지점까지 순조롭게 달렸습니다. 겨우내 열심히 연습해온 후배는 10킬로를 지나자 걸린 발동을 늦추지 않고 역시 조금씩 앞서 나갔습니다. 그 후로는 계속 저 혼자 달려야 했습니다. 광화문을 출발해 숭례문을 바라 보며 돌아 을지로, 청계천을 다리 건너 왕복하고, 다시 종로를 돌아 달렸습니다. 20킬로 지점까지 큰 무리없이 어쩌면 예상보다 잘 달릴 수 있겠다는 착각이 기분좋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마라톤은 착각하는 저를 용서치 않았습니다. 25킬로 지점 조금 못가서 나즈막한 언덕을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작은 걸음을 잘 넘었습니다. 그런데 25킬로 지점부터 다리가 무거워 지고 어깨가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오늘 죽음의 레이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5킬로 지점이후는 점점 속도가 느려져 그동안 잘 맞추어 오던 저의 페이스를 잃어버렸습니다. 30킬로 지점까지 하는데도 벌써 힘에 겨워 4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는 물론,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도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커다랗고 둥그런 노란풍선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길가에 응원단과 자원봉사자가 그렇게 많은 대회인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작은 희망 하나는 응원단이 많고 참가자가 많으므로 어느 정도 따라가면 완주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회였습니다. 30킬로 지점에서 이 대회의 최대고비인 35킬로지점의 잠실대교 언덕은 정말 힘겨운 레이스였습니다. 힘에부쳐 더 이상 달릴 수 없고, 쥐나려는 다리를 멈추어 가로수를 붙잡고 풀어주어야 한 1~2백미터 달릴 수 있었습니다. 수차례 달리다 멈추어 다리 풀다 걷다를 반복하여 35킬로 지점의 잠실대교를 마주했습니다. 지난해가 생각났습니다. 비교적 쉽게 잠실대교를 달려서 건널 수 있었던 지난해를 연상하며 달리려 했지만 발걸음이 떼지질 않습니다. 결국 걷는 걸이가 더 늘어나 겨우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점점 많아지는 거리의 응원단들, 자기 동호회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대열들을 지나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간신히 5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좀더 쉬었다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질 않습니다. 아무리 달리려고 팔과 어깨를 힘차게 치며 나아가려고 해도 다리가 굳어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멈추어 기둥을 잡고 다리와 허리를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남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더 쉬면 5시간 완주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옛날 코미디언 이주일의 실룩거리는 걸음걸이로 달려볼까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41킬로 지점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골인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만치 41킬로 푯말이 보이자 그 곳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습니다. 달린다고 해봤자 빠른 걸음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을 겁니다. 41킬로 지점이 되자 맥이 놓였습니다. 여기까지 너무 힘내서 왔더니 더 나아가기 힘들었습니다. 또 부지런히 가로수를 붙잡고 떠밀었습니다. 경직된 다리 근육과 어깨를 풀기 위함이지요. 반성하는 의미였을까요. 머리를 조금 수그린채 아스팔트만 바라보고 조금씩 달렸습니다. 잠실 주경기장 입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설마 이젠 달릴 수 있겠지. 남은 1킬로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요. 경기장 입구 터널을 지나 트랙을 4분의 3바퀴 돌아 드디어 골인했습니다. 4시간 56분. 간신히 5시간 내 완주에는 성공했습니다.

다섯 번째 풀코스 완주의 작은 기쁨보다 정직한 마라톤 앞에 나의 반성이 앞 섭니다. 연습없이 완주없다. 나는 마라톤 기록에 큰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풀코스를 고통없이 천천히 달려서 완주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나의 반성이 하는 일과 더불어 달리기 연습을 정직하게 하리라는 각오를 줍니다.
그래서 제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지 모릅니다. 늘 깨우침을 줍니다.
연습하면 쉽고 편하게 달리고, 연습하지 않으면 죽음의 레이스 마라톤.
우리의 커리어와 인생 또한 그렇지요.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라도 있습니다만, 우리 인생과 커리어는 정해진 코스도 없지요.
눈 뜬 마음과 준비, 이것이 커리어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제 마라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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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007년 4월 22일) 마라톤 풀코스에 세번 째 도전했습니다.
아름다운 코스를 찾아 달리는 것은 마라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번엔 춘천의 호반마라톤을 택했습니다. 영화 '말아톤'의 형진이가 달렸던 그 코스입니다.
호반의 가로에는 화사한 벗꽃이 꽃그늘을 드리우기도 하고, 바람으로 달려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몸을 잠시 시원하게도 해 줍니다.

요즘엔 지난 해에 비해 강의가 많아져서 여기 저기 지방으로도 다니다 보니 공연히 바쁜 일정이 돼 버렸습니다. 핑계가 된 것인지 달리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만 십 몇 킬로를 달렸으니 모자란 연습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완주는 자신있었습니다. 세번 째 완주이니 시간단축은 못해도 완주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얼마 전 달리기 연습할 때 무릎 부상은 그런대로 거의 다 나아갔습니다. 날씨는 참 좋아서 아주 무덥지도 않고 약간 흐린 날씨여서 달리기엔 참 좋은 날씨였던 것 같습니다. 춘천의 코스는 초반 4킬로미터까지가 가장 어려운 난코스입니다. 계속 오르막길이죠. 그래서 초보자는 오버페이스를 하기 쉬운 곳입니다. 이런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오버페이스를 자제하면서 천천히 달렸습니다. 봄풍경과 호반풍경을 적당히 즐기면서 달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42.195 킬로미터의 반을 지날 무렵 지난 대회와는 다르게 조금 힘이 부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0킬로 지점은 왜이렇게 먼 것인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5킬로 단위로 설치된 음수대에서마다 물을 마시고, 10킬로마다 있는 간식도 먹고 다리도 적당히 풀고 달렸지만 힘이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 30킬로를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점부터는 발걸음을 옮기기 힘에 겨웠습니다. 도저히는 더는 달리지 못해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멈추어 서서 다리를 푸는데 앰뷸런스를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속으로 창피했습니다. 앰뷸런스 자원봉사자가 나오더니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줍니다. 내가 쥐가 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냐고 물으니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다시 달렸습니다. 천천히 통증이 점점 심해져 오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며 달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큰 대회는 아니어서인지 풀코스 신청자가 160명 가량 되어서인지 너무 외로웠습니다. 3백미터 가량 앞에 한 사람 있고, 2백미터 쯤 뒤에 한 사람 있는 외로운 행로였죠.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힘들고 아파서 달리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수차량을 탈까 생각했습니다. 순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한참을 서서 고민했습니다. 얼마간 천천히 달리는데 수지침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손가락을 스무 군데도 넘게 사혈을 하고 다시 달렸습니다. 100리가 넘는 거리는 정말 짧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지난 대회까지 풀코스를 두 차례 완주했기 때문에 방심했던 나의 안일을 마라톤이라는 한계는 나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여 운동장의 트랙을 천천히 돌아 간신히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제한 시간 4분을 남겨놓은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죠.
역시 인생과 닮았습니다, 마라톤은!  또 그렇게 힘들게 달렸는데도 달리고 나면 그 쾌감으로 멈출 수 없는 달리기 본능.

삶의 무게를 안고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나에게, 우리에게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자신을 관리하면서 달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달리며 '질주본능'이란 말은 떠오르는데 하염없이 빠르게만 달릴 수 없는 그런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풀코스의 한계도 연습에 의해 정복되었듯이 인생 또한 나의 열정과 노력으로 조금씩 순응시켜 나갈 것 같습니다. 내가 인생에 순응하고, 인생이 내 앞에 순응하여 하나가 되는 그 날까지 나는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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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가 마라톤을 동경했습니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인지 단거리 달리기는 그런대로 빠른 편이었는데 오래달리기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중.고등학교때 800 미터와 1천 미터 오래달리기를 할 때 종종 하늘이 노래져 체육선생님이 그늘에 앉아 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어릴 적 영화 '마이 웨이'의 감동에서였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애국심과 투혼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달려보리라 생각했습니다.

2004년 가을 기회가 왔습니다. 친구가 이미 몇 년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고, 완주도 몇 번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바빴을텐데 거창한 일을 해낸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가 참가한 마라톤대회에 가족들과 더불어 함께 응원도 가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나는 확실히 결심을 못하고 내년(2005년)엔 함께 달려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더가 11개월이 지난 2005년 10월초에 열린 그 대회가 한 달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내년엔 함께 달려보자는)도 있고, 내 결심을 현실화하기 위해 바로 그 날 마라톤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이 2005년 9월 4일입니다. 대회를 불과 한 달도 안 남긴 날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연습은 최대한 노력해서 10킬로미터 완주로 정했습니다. 10월 초의 대회에서 힘들긴 했지만 기분좋게 완주했습니다.

연습을 조금씩 하고, 대회에 참가하면서 연습을 시험하면서 나는 마라톤의 참맛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는 듯합니다. 마라톤이 인생, 커리어와 참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이 좋습니다. 그런대로 평탄하기도 하다가 무릎의 통증이 심해지기도 하고, 약간 오베페이스를 하면 턱턱 차오르는 심장이 벅차기도 합니다. 다시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면 그런대로 달릴 수 있습니다. 거리가 10킬로 이든, 하프이든, 풀코스이든 원리는 같습니다. 다 달리고 난 후 그런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즐겁고 고통스럽고 견딜만하고 기쁘고 행복한 달리기는 우리 인생의 마디마디와 참 닮았습니다.

제가 직업으로 종사하고 있는 커리어의 세계 또한 변화가 무쌍하고 힙겹고 고비들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의 커리어를 접하고 발견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최소한 50년을 일하는 요즘의 커리어는 마라톤을 달리는 원칙과 너무 닮았습니다. 초반에 잘 달려진다고 오버베이스하여 얼마 못가서 힘겨워 하는 사람, 초반에 출발점부터 힘겨워서 그만두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35킬로 미터 지점에서 한계를 넘지 못하고 포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내가 커리어와 인생을 공부하고 깨닫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픈 만큼 마라톤에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c)서형준코치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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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07년 2월 12일은 제법 뜻깊은 날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만든게 1월 19일이니까, 꼭 23일만이죠.
저의 블로그 방문객이 하루 1천명을 처음 돌파한 날입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부담적게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다른 분들과 글로써 접촉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닌 걸 알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저의 글을 담아서 소중하게 활용해 주시는 것을 보면 보람되기도 한 나날입니다.
이전에 다른 블로그와 달리 티스토리의 블로그는 그야말로 인터넷의 검색과 오픈 세상을 맘껏 느끼게 해준 고마운 저의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세상을 향해 제 이야기를 천천히 해 나가고 싶어집니다.

하루 1천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자세히 읽건 흘려 보내건 그것은 제게 사뭇 흥분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제 생각과 글을 아끼는 만큼, 다른 분들의 글과 창작도 열심히 읽고 보고 배우겠습니다.

어제는 또 하나 기억할 날입니다. 제 아들이 유치원을 졸업한 날입니다. 아빠들은 별로 참석하지 않는다기에 바쁜 핑계를 대고 저도 참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녀석이 대견하게도 건강하게 자라줘서 참 고마운데 유치원을 졸업했다니 기특합니다. 아들이 큰 만큼 많은 분들이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1천명을 훌쩍 넘어섰나 봅니다.

우리 아이도, 저도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2007년 1월 19일 이후로 매일 포스트를 올리며 숨가쁘게 달려온 듯합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즐겨하는 이디오피아의 마라톤 소년 꿈나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숨이 차면 더 빨리 달리면 돼요! 그건 결승점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하하, 마라톤을 조금 해본 저로서는 숨이 차면 더 빨리 달리면 조금 위험하단 생각을 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년 마라토너의 말에는 소박한 진리가 담겨있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숨이 차면 쉬거나 천천히 가야할텐데 이 소년은 결승점, 미래를 보고 달린 것이니까요. 제 나이가 소년의 기백을 따를 수야 없겠지만 소년을 배우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달려볼 생각입니다.
풀코스 마라톤에서 이제 겨우 1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한 것일까요? 앞으로 달리기를 즐기듯이 블로그와 더불어 세상과 더불어 커리어와 삶에 관한 너무 무겁지 않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는 앞으로 내용과 형식을 좀더 알차고 재미있게 꾸며서 저의 생각과 느낌, 일과 사랑을 기록하는 나만의 미디어로 만들어 볼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만나게 될 블로그 이웃, 동료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대신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2007년 2월 13일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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