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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극찬한 발레리노 김용걸



■ 방송일시 : 2007년 4월 12일 (목) 밤 11시 40분~12시3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이상운, 작가 : 허수빈





동양인 최초의
파리 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 김용걸!
무대를 압도하는 몸짓으로
세계의 정상에 도전한다.

1997년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 3등 !
1998년 파리국제무용콩쿠르 듀엣부문 1등 !
국내에서 정상의 자리를 버리고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계약직 견습생으로 시작,
단독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솔리스트가 되기까지.

발레의 본고장 ‘프랑스’를
땀으로 적시는 희망의 증거, 김용걸
삶이 묻어나는 춤을 추는
발레리노 김용걸의 무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부산 섬 소년, 발레 타이즈를 신다!
여느 남학생과 다름없이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김용걸. 중학교 3학년, 평소 발레를 시키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발레학원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발레학원
가기를 싫어했다. 같이 발레를 하는 여학생들에게도 딱 붙는 타이즈를 입을 때면 놀림을 받기 일쑤였으니 학원가기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했다.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도망가는 아들 손목을 잡고 학원으로 향했다는 그의 어머니. 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시작한 발레가 어머니의 열정덕분에 발레인생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부산예고를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발레무대에 서기 시작한 그는 대학 졸업 후 1995년
국립극장에 입단 하고 단번에 수석 무용수 자리를 꿰찬다. 1997년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에서 동상 수상을 시작으로 1998년 파리국제무용콩쿠르 듀엣부문 1등을 차지하며 한국 발레 정상에 우뚝 선다. 파리 콩쿠르에서의 수상은 발레의 종주국 안방에서 이룬 쾌거 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 발레가 주목받기 시작한다.

해외 유학을 한 무용수들이 판치는 한국 발레 계에서 유학 한번 하지 않은 한국 토종 발레리노가 국내에서 정상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아가고 있던 찰나 이었다.

“나는 절대 쉽게 춤을 출 생각이 없다. 나는 기꺼이 힘든 일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기꺼이 어려운 일들에 부딪치고, 어렵고 힘든 일들을 기꺼이 해내고 싶었다.” (김용걸 인터뷰 中)


▶ 주목받던 한국의 별, 프랑스의 견습생을 자처하다!
2000년, 28살의 주목받던 한국의 별, 김용걸은 오로지 춤을 위하여 홀로 프랑스 땅을 밟는다.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춤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해외진출을 모색하던 중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5개월 계약의 견습생을 뽑는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파리로 날아간다.
오디션에 합격한 그는 발레의 본고장 파리에서 동양인 남성 최초로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견습생이 된다. 한국에서 주인공만 맡으며 관객의 박수를 한 몸에 받다가 무대 밖 한쪽 구석에서 스페어타이어처럼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김용걸씨.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단원들 사이에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며 모두 돌아간 늦은 밤까지 계속 춤을 추었던 그는 5개월 뒤 정단원을 뽑는 오디션에 46명 중 1위를 차지, 2000년 7월에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정식 무용수가 된다.

발레단원의 95%가 파리발레학교 출신으로 외국인에게는 배타적인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그는 동양인 최초로 정식 단원이 되어 군무를 추게 된 것이다. 입단 22개월째이던 2002년, 바스티유 극장에서 공연한 <돈키호테>의 2막 1인무를 맡아 줄 무용수가 부상을 당해 대타로 기용된다. 이후 6차례의 공연에 더 출연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평가 ‘르몽드’, ‘피가로’의 찬사를 받았다. 그 해 군무와 1인무를 겸하는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 발레단에서 입지를 넓혀간다.

마침내 2005년 12월, 승급시험을 1등으로 통과하여 동양인 최초로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솔리스트’가 된다.

“꼭 잊어야 하는 것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주역 무용수 이었다는 것.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상을 탔었다는 사실... ” (김용걸 인터뷰 中)

▶ 파리 오페라발레단 동양 유일의 ‘솔리스트’ 김용걸 - 다시, 날개를 펴다! 2007년 3월 26 / 31일.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이 있는 날. 바스티유 극장의 분장실 한쪽에는 “KIM(김)”이라고 씌어진 종이가 붙은 의상이 걸려있다.
바로 <돈키호테> 제 2막에서 단독으로 무대에 서는 집시 역할을 맡은 김용걸의 무대의상이다. 지난 2002년 부상당한 무용수 대타로 기용되어 추었던 역(役)을 솔리스트가 된 후 다시 맡게 된 것. 공연 10분 전, 순서를 기다리며 몸을 푸는 김용걸씨의 표정에는 예전보다 더 긴장감이 감돈다.

이번 공연이 지난 10월 아킬레스건 사이의 뼈가 닳아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 후 첫 공연이기 때문이다. 연습 중간 중간 발이 붓지 않도록 얼음찜질을 하며 오늘의 무대를 준비했다는 그는 아픔을 겪은 후 삶의 무게를 표현할 줄 아는 춤꾼으로 무대에 선다. 무대 밖에서도 삶이 묻어나는 춤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물하기 위해 그는 틈틈이 안무 구상 등 안무가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외로움과 좌절마저도 삶의 일부로 껴안을 줄 아는 그는 자신을 보고 희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는 오늘도 5월 5일 이후 ‘백조의 호수’ 프랑스 지방순회공연 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니진스키홀로 향한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닌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용걸씨. 더 넓은 세계를 향한 그의 몸짓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목표가 뭐냐, 꿈이 뭐냐고. 그들은 당연히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에뜨왈이겠지 생각한다. 하지만..나의 꿈은 내 인생에서 에뜨왈이 되는 것이다.” (김용걸 인터뷰 中)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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